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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상을 뒤덮은 어둠이 물러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수많은 별빛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하늘은 옅은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커다란 산맥 뒤에서 태양이 숨어 있었지만, 연노랑 빛으로 땅을 밝히고 있어서 누가 봐도 동이 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이었으며,
다른 누군가에겐 하루의 끝이었다.
거리를 활보하던 주뱃과 흔들풍손, 고오스들은 저물어가는 어둠을 따라 날아가 자취를 감췄다. 독케일 대신 뷰티플라이가, 삐삐 대신 꼬물웅과 로젤리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그 시간의 경계 속에서 움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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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지님, 벌써 날이 밝았네요."
"그러게요.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만하면 꽤 유의미한 수확은 있었죠."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고요."
두 남녀는 흑요들판의 절삭다리와 흑요 폭포 사이에 있는 절벽에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밤새 쉬지 않고 돌아다녔던 건지, 묘하게 얼굴이 부어있었고 어딘가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보였다. 혜지는 팔을 위로 당기며 기지개를 켜고 하품 했다. 월로도 그런 혜지를 따라 하품 하며 상체를 좌우로 돌리면서 스트레칭 했다.
"오늘은 이만 해산할까요? 저 배고파요 월로님, 아침 먹으러 가요."
"좋죠, 저도 좀 출출하네요."
두 사람은 울긋불긋한 산맥을 따라 내려가다가, 눈앞에 흔들리는 나무에 시선이 끌려 바라본다. 나무는 요란하게 퍼석퍼석, 하는 소리를 내며 휘청였다. 가지에 달린 나뭇잎들이 조금씩 흩날리며 땅에 떨어졌다.
"그냥 지나치기엔 신경 쓰이네요. 저것까지만 확인해 보고 가요."
"혜지님 마음대로 하세요."
혜지는 블레이범을 포켓몬볼에서 꺼내, 문제의 나무를 흔들어 달라고 지시했다. 블레이범이 그녀의 명령에 따라 나무를 세차게 흔들더니, 무언가 덩어리진 것이 나무 위에서 툭. 떨어졌다.
"역시 포켓몬?"
"혜지님이라면, 복귀하는 겸 조금이나마 실적을 쌓고 가는 편이 좋긴 하겠네요"
나무에서 떨어진 포켓몬의 정체는 도롱충이였다. 얼굴과 꼬리를 제외한 온몸을 초록색 나뭇잎으로 빽빽이 뒤덮은 벌레 포켓몬. 도저히 뭘 좋아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혜지가 좋아하는 포켓몬 중 하나였다.
"도롱충이다!! 귀여워!!"
"하하.. 귀여운가요..."
혜지는 신난 표정으로 규토리로 손수 만든 몬스터볼을 한 손에 쥐고 던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때, 혜지가 꺼낸 블레이범이 숨을 크게 두세 번 끊듯이 들이쉬더니 '푸릉!!' 소리를 내며 도롱충이 앞에서 크게 재채기했다.
블레이범의 엄청난 재채기로 인한 거센 바람으로 도롱충이의 몸에 붙어 있는 나뭇잎들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아가 전부 땅에 떨어져 버렸다. 도롱충이는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블레이범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몸에 있는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당황한채로 떨어진 나뭇잎을 찾아 급하게 몸에 붙였다.
혜지와 월로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허둥지둥 나뭇잎을 몸에 붙이는 도롱충이의 뒷모습을 보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혜지가 도롱충이 뒤통수를 향해 정확히 몬스터볼을 던져서 맞췄다.
"제가 알려드린 배후노리기군요... 아무리 저라도 저런 상황에는 기다려줄 것 같은데, 혜지님은 역시 냉철하시네요."
"아니, 월로님..!! 직업병라고요! 조사대원은 최대한 포켓몬을 많이 잡아 와야 돈을 더 번다고요!"
월로는 입꼬리를 올리며 혜지를 은근히 놀려댔다. 혜지도 월로가 자신에게 장난치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왠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렇게 말이 길면 더 수상해 보인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와중에 블레이범은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푸르릉' 하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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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까 본 다 벗겨진 도롱충이는 솔직히 좀 웃겼어요."
"저도 그런 건 처음 보네요. 혜지님과 있다 보면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왈가닥이라 그런 걸까요?"
"하하. 아니라곤 말 못 하겠지만, 전 재밌고 좋아요."
혜지는 자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부정해 주길 바랬던 월로가 순순히 인정하는 것을 보고 심술이 난 표정으로 째려봤다. 월로는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비치곤, 뭔진 모르겠지만 잘못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나저나 이 도롱충이 옷을 새로 만들어줘야 하나 고민이네요. 분명 히스이는 추우니까 항상 뭔가로 뒤덮여 있던 거겠죠?"
"맞아요, 방금 잡으신 초목도롱은 연약하고 추위에 약해요."
"으아;; 미안해라.. 제가 원래 걸치던 나뭇잎보다 더 따뜻한 옷을 만들어줘야겠어요!"
"흥미롭네요, 나중에 완성되면 저도 보여주세요."
"물론이죠."
두 사람은 곧 포부의 언덕으로 넘어가 베이스캠프로 도착했다. 혜지는 라벤 박사님에게 밤새 잡아온 포켓몬과 함께 상황 보고를 했고, 월로는 혜지의 옆에서 조용히 축복마을까지 따라갔다.
월로와 혜지는 축복마을 입구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따뜻한 국물 요리를 먹고 몸을 데운 다음, 후식으로 토란떡을 집어 먹었다.
"아, 살 것 같다. 이거 먹으려고 살죠."
"하하, 혜지님은 단순하네요. 맛있는 거 많이 먹여드려야겠어요?"
"우와, 좋네요 ~! 히스이의 산해진미를 전부 먹고 싶어요!"
"산해진미라, 혜지님이랑 다니려면 유적 탐사뿐만 아니라 음식 탐사도 열심히 해야겠군요."
"맛있는 음식이 주는 감동이 있으니까요,"
"꽤 진지하시네요."
"당연하죠."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혜지의 은하단 숙소에 들어가 짐을 놓고, 노가 있는 마룻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월로님,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혜지님도요. 하루 일과의 끝이 아침이네요."
⋆。˚ ☁︎ ˚。⋆。˚☽˚。⋆
- 글 밖의 말
나는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대의 하늘도 좋아해. 하루의 시작 같은 느낌이잖아, 이때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공기 냄새도 있고.
지금은 밤샘 절대로 못하지만,
예전엔 자주 밤을 샜었어.
친구랑 밤새도록 통화도 자주 했었고, 좋아하는 사람 사진을 잔뜩 찍어서 포토샵으로 보정하면서 날을 지새기도 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혼자 생각이 많아지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한번은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가 저녁에서 아침이 되었어.
이젠 그런 거 못해..
새벽 시간대만 되어도 내 몸이 얼른 자라고 호통치고 있어, 몇년사이 나는 많이 약해졌지.
하지만 드림 안에서는 밤도 새보고 싶고,
그.. 레알세를 플레이할 때 변해가는 밤과 새벽과 아침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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