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향해 유영한다]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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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인 불명의 편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월로도 예외는 아니었다.그의 세계재창조를 향한 야망과 치기는어느새 빛바랜듯 희끗해진 머리카락처럼 옅어졌다.나는 무엇을 고민하고 헤메이는가.모든 것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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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눈으로 우주를 유영한다.

모래 밭에 파묻혀 있는 것도 아닌데, 시야가 온통 굵직한 모래 알갱이로 뒤덮인 것 마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서 나는 유일하게 무중력 상태의 인간이 된다.

몸이 가벼워진다. 귓속이 점점 먹먹해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길바닥에 나뒹굴었는지 몸이 더러워진 채로 쓰러져있었고, 피부끝에서부터 아린 감각이 돌아온다. 넘어지면서 여기저기 쓸린 상처들임이 틀림없었다.


청각이 돌아온다.
월로 근처에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야가 돌아온다.
모두가 월로를 내려다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정신이 드세요?"
모르는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월로에게 쏠렸다.

.
.


월로는 무겁고 거치적거리는 육체를 버리고 21g의 영혼만 남은 채 혜지를 만나러 가려던 시도가 벌써 수십번째 실패하고 있었다.

이 몸은 쉽사리 죽지 않는 주제에, 갈수록 늙고 쇠약해진다. 이 얼마나 잔인한 저주인가. 신을 기만한 댓가인것일까. 이딴 걸 바란 적도 없었는데, 나는 왜..


가슴 안 주머니에 넣어뒀던
당신에게 쓴 편지가
가슴팍에서
툭.
떨어졌다.


시야에 들어온 종이봉투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다.
월로는 괜히 서러워진다.
천국으로 가는 우체국은 없다.
나는 당신에게 붙일 수도 없는 편지를 썼다.


바래진 연노랑 빛 머리카락의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마침내 소리를 지르고 오열하면서 편지봉투를 박박 찢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노망 난 어느 미친 노인네의 기행이라고 생각할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월로의 속은 그러거나 말거나  타들어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표정으로 흉보던 뭐던 알 게 뭐야. 그는 이미 무엇을 가져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노인일 뿐이었다.


월로는 편지를 형태도 보기 어렵게 갈기갈기 찢어놓은 종이 쪼가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 성에 차지 않은듯, 주저앉은 채로 부들부들 떨며 울그락불그락 잔뜩 성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조각난 편지조각들을 손으로 주워담아 안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리고선 한숨을 쉬고, 그의 커다란 손바닥으로 흙이 묻은 옷을 털고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났다.

키가 멀대같이 큰 월로는 어딜가나 시선을 끌었다.
사람들의 머리위에 툭 튀어나온, 잔뜩 벌개져서 씩씩거리는 그의 얼굴도 고개만 위로 들면 곧잘 보였다.


장생종의 사랑은 비교적 수명이 짧은 필멸자보다 느리고 오래 간다. 서로 체감하는 시간이 다르기에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도, 분노도, 슬픔도, 행복도 평범한 인간보다 느리게 흘러갔다.


모든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월로는 여전히 인정할 수 없었다.


너덜너덜, 찢겨진 종이 자락에는 흙이 잔뜩 묻어 더러워진, 편지였던 작은 종이 쪼가리들을 월로는 안주머니에 소중히 품었다. 주머니 안이 더러워지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사실 그건 지금의 월로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 당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가.
빠르게 스쳐간 당신은 여전히 선명하고 느리게 남아 있었다.










- 글 밖의 말
영혼의 무게는 21g.
우리는 때가 되면 가벼워질 존재.
과거에 목매지 말고, 인생을 가볍게 살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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