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바다, 조수간만의 차]
2026.04.02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엔 어둠이 깔렸다. 낮의 활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볼때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한 수많은 별들이 발광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커다란 달이 구름 사이로 슬며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덕에 외롭진 않았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밤 공기, 언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고스트 포켓몬 때문인지 조금 위축되었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몸을 사렸다.



과거에는 지구와 달이 더 가까웠다지?
아무래도 지금 여기, 내가 살던 세상보다 훨씬 더 옛날시대가 맞는 것 같다. 이곳의 달은 정말 거대했다.

히스이에 떨어지기 전, 원래 세계에선 슈퍼문이 떴다는 뉴스기사를 볼때마다 감탄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남기곤 했는데, 그 슈퍼문은 귀여울 수준으로 히스이의 달은 하늘의 상당부분을 꽉 메웠다.


저 달을 쳐다보고 있자니 위압감에 짓눌려 압사할 것만 같은 공포심이 생겼다.


어쩐지 조사대 일로 아침부터 대쓰여너님을 타고 군청 해안가를 돌다 저녁이 되어서야 기지로 복귀할때면, 어느샌가 대굴레오가 굴러다니던 모래사장은 당연한듯이 바닷물이 차올라있었다.

그냥 지형 특성이겠거니 하고 넘겨왔지만, 이젠 그 이유를 조금 더 알 것 같기도 했다.

달이 이만큼 가까이 있으니까,
해가 질때쯤이면 달이 히스이의 하늘을 덮을 준비를 하며 바닷물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기니까 그랬구나.


그래서 조수간만의 차가 심했던 거구나.


아무래도 밤의 군청해안은 왠만해서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방금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히스이, 여기는 자연의 위대함과 거스를수 없는 무서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곳곳에는 동물이 아닌 포켓몬들이 있고, 그들과 공생할 방법을 찾는다나.

아직 미개척지가 많은 이곳을 모두가 살기 좋게 만들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할 포켓몬 조사와 연구를 위해 지금의 내가 소속되어 있는 조사대원이 존재한다.

운이 좋게도, 평균적인 사람보다 체력과 근력이 받쳐줬기 때문에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일 할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사대원의 임무는 생명에 대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어서 보수도 꽤나 쏠쏠했다.


무의식적으로 확신하건데,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철저히 외부인 신분이지만, 정착할수 있는 역활이 주어진다는 것마저 감사할 일일까?

다시 되짚어봐도 이 모든 일에 개연성이 없어서 혹시나 원래의 내 몸은 혼수상태에 있고, 지금까지 기나긴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싶어서 피식 코웃음을 쳤다.

한번은 제대로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절벽에 떨어진다던지 이것저것 시도하기도 했었다. 꿈이면 다쳐도 아프지 않다는데 더럽게 아팠다. 죽음 직전까지도 몇번이나 겪고 나서는 필사적으로 살아있을 뿐이다.


긴 꿈을 꾸는 것도 아니었고, 질기도록 살아남았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이곳에 살아있다.



그렇게 홀로 자기연민에 빠져있던 것도 잠시, 몸이 기억하는대로 터덜터덜 걸어나가다가 어느새 축복마을로 향하는 들판 기지에 도착했다.

이 늦은 시간까지도 라벤 박사님과 은하단의 야간 순찰대원은 자리를 지키며 포켓몬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바로 옆에 와서야 기척을 눈치챈듯 두 사람은 화들짝 나를 향해 돌아보며 누가봐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Oh~! 혜지양, 언제부터 여기 있었나요?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라벤박사님의 말에 괜시리 머쓱해져서 방금 전의 우울함을 감추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방금 막 왔어요. 놀래켰다면 죄송해요,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어떤 대답도 듣지않겠다는 듯 나는 도망치듯 축복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저 사람들도 어차피 바빠서 그러려니 가볍게 넘어갈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기분이라면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밤중에 몰래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간다.


저 멀리 월로가 내게 다가온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자면, 늘 히스이의 거대한 달이 떠오르곤 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때마다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빠르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왠지 숨을 쉬기조차 조금 버거운 기분마저 든다.

마치 가슴 위까지 물이 차오른 물가에 있는 기분이다. 일렁이는 파도가 흉부를 압박해온다. 동시에 우울함과 불안도 전부 뒤덮여서 상쇄시켜 오로지 그에게만 온 신경이 쏠리는 것만 같다.


그는 마치 밤하늘의 달.
나는 그런 달에게 끌려오는 바다일까?

당신은 달, 나는 당신이 가까이 올 수록 요동치고야 마는 바다.







-글 밖의 말

월로하면 왠지 달 월(月)이 생각나서 자연스레 달이 생각 남.. 나는 바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달과 바다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니 언젠가 이 소재로 쓰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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