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지는 월로와 함께 야밤에 홍련습지를 걷다 저 멀리 우뚝 서있는 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혜지는 그곳을 향해 손을 뻗어 월로에게 여기좀 보라는 듯이 가리켰다.
"월로님, 저기 봐요. 마치 나뭇가지에 걸린 달이 잘익은 열매같지 않나요?"
"하하하, 혜지님은 재미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네요. 제가 보기엔 열매치곤 색이 꽤 옅어서 덜 익은 것차럼 보이기도 하네요."
"색깔이 옅어서 아직 덜 익은 것 같다고요?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우연의 일치로 겹친 걸 보고 우리가 서로 다른 의미부여를 하는 건, 각자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은 다르다는 증거겠죠?"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어쩔수 없는거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월로님이 앞으로 제 세상을 넓혀주세요. 같이 있으면 또다른 사고방식로 모든 걸 다시 바라볼 수 있어서 즐거워요. 마치 원래 내가 보던 세계가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무언가로 겹쳐진 것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는 건.. 신선하네요."
"월로님이 세상을 보는 시선이랑 저의 시선이 다르니까, 같은 세상에 있더라도 다른 세계에 사는 거겠죠.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동상이몽일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동상이몽이라, 뭐, 저는 제 목적만 이룰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 이상을 바라진 않습니다. 모든 건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남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누군가는 이용당하는 게 맞긴 하죠."
"너무 당연하죠."
"그래도 그건 왠지 씁쓸하네요. 나 자체로써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 계속 남에게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야할 것 같아요."
혜지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혜지는 호기심에 월로를 힐끔 쳐다봤다. 그는 왠지 상처받은 사람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그가 타인에게 이용 당해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그런 사고방식이 자리잡았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본인의 내면에 가장 솔직했던 말이었기에 그랬을까.
혜지는 월로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지만, 그냥 모른 척 넘어가주기로 했다. 내가 신경쓸 부분이 아닌, 이 사람이 알아서 생각해야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적은 월로를 위해 깨뜨리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동안 계속 홍련습지를 가로질러 걷기만 했다.
- 글 밖의 말
월로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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