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로님, 고백할 게 있어요."
"갑자기요?"
"별거 아니에요. 사실 내색 안 했지만, 저는 여태까지 도망쳐오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쩌다 도망치게 되셨나요?"
"조금 힘들다 싶으면 어디든지 도망친 것 같아요."
"그런 것치곤 조사대원 일을 성실하게 잘 해내시는 걸요?"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요. 물론 저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무섭죠. 실시간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니까요. 가끔씩 안 좋은 생각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근거는 없지만요."
"혜지님이라면 잘 살 거예요. 제가 없었더라도.."
"아뇨, 일단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요."
"..알겠어요."
"월로님이 없어도 전 충분히 어떻게든 잘 살았겠지만.."
"혜지님..?"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렇죠. 월로님도 꼭 제가 아니었더라도 잘 살아가겠죠."
"...그렇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네요. 아마 엄청난 확률을 뚫은 기적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으니까요. 여전히 내가 살아왔고, 행복하기도 했던 과거가 그립지만, 이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요. 다만.."
"다만..?"
"계속 월로님 곁에서 이런 얘기도 하고, 신화 조사도, 히스이 방방곡곡을 다니는 것도,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전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들어서요."
"혜지님.."
"게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진심 어린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귀중한 거고요.
"...전 여태까지 줄곧 혼자였는걸요."
"월로님, 조금 섭섭하네요. 눈앞에 사람을 두고 할 만한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죄송해요 혜지님, 가까운 인간관계는 익숙지 않아서요."
"적어도 지금의 우리는 혼자가 아닌 것 같네요."
"..그러게요."
"밤이 늦었네요, 어서 잠들도록 해요. 내가 8년은 더 어렸다면 모를까... 의미 없는 대화로 밤새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저와 월로님의 내일도 소중하니까요."
"그게 맞죠. 각자의 위치에서 내일도 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요."
"서로 껴안거나 껴안기면 잠이 잘 온대요. 히스이의 밤은 추우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붙어서 자요."
"그래요 혜지님,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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