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볼]
2026.03.15




월로와 혜지가 같이 살게된지 반년이 훌쩍 지났다.

당장 뭔가 구미가 당기지만 무얼 할지 모르겠는등 심심한 날이 오기도 했는데, 그럴때마다 둘은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낼 놀이를 고안하고 실행에 옮겼다.

한번은 혜지가 '캐치볼'을 제안했다.

룰은 간단했다. 서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 서서 규토리볼로 만든 동그란 구형의 물건을 던지고 받고, 주거니 받거니만 하면 되었다. 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한 놀이가 한번 집중하자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체력을 쏙 빼놓기도 했다.

그뒤로 월로와 혜지는 가끔씩 캐치볼을 하곤 했다.

그러다 두 남녀가 지칠때쯤이면, 들판에 나란히 누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구름의 모양새에 대해 떠들었다.


" 이 구름은 붐볼, 그 구름은 꼬링크, 저 구름은 토게키스. "
" 진짜 그렇네요, 와 어떻게 이런 모양이! "



아무생각없이 편안한 일상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월로는 옆에 누워있는 혜지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혜지는 그런 월로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서로가 가까이 얼굴을 맞대는 것조차 당연하다는듯 자연스럽다. 혜지도 월로를 보며 웃는다. 남녀 어느 한쪽이 먼저 웃음을 터뜨리다가, 어느샌가 주변을 둘만의 웃음소리로 채운다.

한명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연약한 살을 간지럽히는 순간, 언제 지쳤냐는듯 월로와 혜지는 다시 전력을 다해 장난을 치면서 투탁거리곤 한다. 머지않아 다시 탈진한 두 남녀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다 스르르 눈을 감고 낮잠에 들었다.





눈을 감자 주변이 암흑으로 뒤덮였고,
혜지는 꿈을 꿨다.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조금 더 젊어보이는 부친과 캐치볼을 하며 열심히 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주위 풍경은 가족과 다같이 살았던 아파트 앞이였다.

한번은 아버지가 던진 공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뒤로 넘어간 공을 찾으러 뛰어가서 다시 공을 주워들고 왔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공을 아버지를 향해 던지면서 계속 캐치볼을 이어나갔다. 아슬아슬하게 공을 받을때마다

왁! 오, 위험했다! 등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공을 넘겨주는 아버지의 얼굴은 다정했고 나와 함께 놀아주는 따뜻함이 너무 좋았다.

하늘은 초저녁에서 완전한 밤으로 넘어갔고,
주변이 깜깜해진 것을 의식하고부터 꿈에서 깨어났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일렁이는 대낮의 하늘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낯선 세상.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가능성도 미지수다. 두고 온 가족들을 다시는 볼수 없을 것 같은 허망함에 가슴에 어딘가 구멍이 난듯 허했다.

차르르 -

산들 바람이 불었고, 풀이 땅에 드러눕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월로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뽀얀피부에 닫힌 눈 사이 촘촘한 속눈썹이 눈에 보인다.
시선은 더 아래로 내려가 혈색이 도는 도톰한 입술로 간다.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잠든 월로를 보자니, 속이 타들어갈듯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혜지는 월로의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게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앞으로 남은 것은 한치앞도 모르는 나의 미래,

내가 할수 있는 건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발버둥 치는게 전부일 뿐이라서

넓은 바다를 부유하는 해파리처럼 힘을 빼고
세상에 몸을 맡겨 본능대로 해엄쳐가기로 했다.







-글 밖의 말
캐치볼 안 한지 백만년 됨
어렸을때 공원이나 집근처에서 자주 캐치볼 하면서 놀았었는데 추억이네..

월로는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 좋은 아빠란 무엇일까? 결국 내 경험의 한계에 도달 할 것 같아.

난 엄마가 사업하며 사기를 여러번 당해서 사람을 불신하고 인생을 비관하다 혼자 극단적 선택을 하여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빠 혼자 살림이랑 외벌이하면서 나랑 동생을 키우셨어.

주말에 요리학원까지 다니면서, 매일 새벽일찍 일어나 요리하고 운동하고 출근하셨어. 좋은 거 먹여야한다며 식재료도 신경써서 많이 넣으셨지. 그래서 자취하면서 나 혼자 음식 해먹을때 이것저것 다 넣어버리는 버릇이 있었어. (지금은 그렇게까진 안 해...)

자라오면서 정서적인 부분은 소홀했는데, 그래도 동생도 나도 부족함을 잘 못느끼게 키워오셔서 이정도면 꽤 괜찮은 가장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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