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지는 가진게 고작 맨몸 하나일 뿐이었다.
신이라고 불리는 포켓몬의 가호도 받지않았으며, 철인같이 강한 육체와 성인군자만큼의 정신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포켓몬을 능숙하게 다루기는 커녕, 모든게 낯설고 서툴어 버벅거릴뿐이었다.
어딜봐도 특별할 것 없는 인간 여자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떤 가능성을 보고 다가온 월로의 기대를 무너뜨리기엔 충분하다고 미리 어림짐작했다. 아마 그의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직관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은 어떻게 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갈수 있을까? 혜지는 혼자 남겨질때마다 발뒷꿈치를 엉덩이에 붙이고 주저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기억을 되짚어보며 원래 그녀가 살던 세상으로 건너간다.
나는 원래부터 나약한 사람이었지.
잠시동안 추억에 젖어있다가 이방인으로써 살아가는 고립감을 잊어버렸다.
왠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상한 근자감이 생기기도 했다.

애초부터 나는 혼자 살아갈수 없는 사람이었고, 지금껏 큰 문제없이 살아왔던 남에게 의존하거나 협력해오는 생존전략을 따라가는게 자연스러웠다.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맡기는 건 평범한 여자로써는 너무나도 위험한 선택이지만, 최소한의 위험요소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월로, 월로라는 남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면 그만이다. 쓸모가 없더라도 함께있고 싶다는 마음만 든다면 기꺼이 곁을 내주고 애착을 갖는게 인간이다.
아무리 빈틈없고 속내를 모르는 남자라도, 사람은 결국 사람이지. 아마도 가능할 것 같았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신기하게도 원하는 것이 이끌려왔던 그녀였다. 혜지는 월로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결핍을 찾아내 그가 원하는 감정 이상의 것을 주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나를 위해서 그를 옥죄는 올가미이자,
동시에 그를 기쁘게 해줌으로써 죄책감을 씻어내릴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어딜봐도 평범한 상호작용일뿐이지 딱히 나쁜 일도 아니잖아. 혜지는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거운 마음을 가져봐야 짐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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