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볼 때마다 월로는
자신이 스크린 안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했다.
월로와 혜지는 주연,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주연 옆에는 조연과 엑스트라들이 우글거렸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존재한다.
스크린 안에는 당신이 있어야 시간이 흘러간다.
나의 과거 행적과 서사는 모두
이야기가 전개되기 위한 복선과 장치.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은
오로지 네모난 프레임이 전부일 뿐,
프레임 밖 세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내일 또 봐요!"
당신과 보내는 시간은 항상 떠나보내기 아쉬운 일요일 저녁 같았다. 해가 질때쯤 우리는 마주보며 손을 흔들었다. 각자 돌아갈 곳이 다르다는 건 왠지 쓸쓸했다.
당신이 귀가하고 한 밤을 자고 일어나면,
나는 재미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남주인공에서 엑스트라 행상인이 된다.
혜지가 월로 앞에 등장하지 않을때마다, 월로는 남의 삶 속에서 묻어지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히스이의 거리 한곳을 메꾸는, 늘 그곳에 있는
장사꾼, 행상인, 은행상회, 영업사원
결국 자신 또한 세상의 부품이라는 건 변함없었다.
당신이 내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 수록, 아무렇지 않게 살아온 나의 일상은 조금 보잘 것 없어졌다. 아무래도 지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제대로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지루해,
지루해,
지루해,
그럴때마다 나는 당신이 내게 저주를 걸었다고
생각하면서 일방적으로 원망했다.
사실 원망하는 만큼 사랑스러웠다.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당신,
헤집다, 혜지, '혜지님, 여기서 뭐하시나요.'
'생각보다 일이 금방 끝나서요.
월로님 얼굴이라도 보러 왔죠.'
'혜지님이 절 찾아왔으니 이제 장사 접어야겠네요.
제일 중요한 손님이니까요.'
'손님인가요? 조금 선긋는 것 같아 섭섭하네요!'
'하하, 장난이에요. 이제 우리는..'
"저기요, 좋은 상처약 다섯 개 주세요."
지나가던 손님이 월로의 망상을 깨뜨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부랴부랴 가방을 뒤지며 상처약의 재고 수량을 확인 한다.
아, 다행히도 재고는 충분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미소를 지으며 능숙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여기! 이 좋은 상처약을 드립니다! 오늘은 특별히! 고객님께 서비스로 하나 더 얹어주겠습니다!"
예기치못한 서비스 때문인지, 밝은 월로의 응대에 기분이 좋았던 건지, 손님은 흡족해하며 물건을 사고 돌아갔다. 월로는 다시 제 갈길을 가는 손님의 뒷통수를 바라보다가 다시 혜지를 떠올렸다.
"그만 생각하고 싶은데."
월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느니,
자신 답지 않은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혜지는 월로가 불을 피우다가 튀어오른 작은 불꽃,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어야 할 불꽃이었다.
하지만 월로의 주변엔 미처 치우지 못했던 불쏘시개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작은 불꽃이 점점 커지고 여기저기 번지더니 주변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하잘 것 없는 작은 변화가 재앙을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 글 밖의 말
요즘 퇴근하면 머리가 멍해져서 창작을 하기가 어렵네, 그래도 드림은 계속 하고 싶어.
월로에게 혜지란 뭘까..
별 거 아닌 약간의 변수였을 뿐인데,
스쳐지나갈 많은 사람중 한 명이었을 텐데,
금방 사라져버릴 작은 불꽃이 산만하게 어질러져 있는 근처의 불쏘시개 때문에 주변이 모조리 번져 활활 태워버려 발생한 산불... 같은 여자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부 다 태워버리면, 온전치 못한 것들은 전부 버리고, 남은 것들은 의미있게 재활용 할 수 있지 않을까.
산불이 나도 산불피해목을 이용해서 칩이나 펠릿 형태로 가공해 화력발전소의 화석연료 대체재로 쓰이는데, 그것도 아니면 가구나 다른 물건으로써 재탄생 하기도 해.. 무엇보다 월로가 끙끙 앓으며 쌓아왔던 불쏘시개들은 다시 재활용 가능한 것들일까
아니면 모든 걸 비우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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